🐈 사진으로 기록할 수 없는 이야기 , 안나

사랑을 많이 바라는 고양이

2022. 12. 18.

🐈 사진으로 기록할 수 없는 이야기, 안나

#냐불냐불 #고양이뉴스레터

올해를 마지막으로 주기적으로 보내던 뉴스레터<냐불냐불>을 마무리합니다. 함께 지내는 고양이 안나, 수이와 좋았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 시작했는데요. 읽어주시는 구독자님 덕분에 많은 추억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아마 마감이 없었다면 약속이 없었다면 그냥 흩어졌을 글이었겠지요. 언제든 다시 열어보고 고양이들을 생각할 수 있는 글과 사진들이 모였다고 생각하니 든든합니다.

고양이들의 이야기는 제게는 '하고 싶은 이야기'이지만, 되도록이면 '해야 하는 이야기'로 확장시키고 싶은 주제였어요. 그런데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는지, 종종 마음을 크게 짓누르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결말이 마음에 안 들면 과정으로 만들면 된다고 하니까요, 다음에 다시 구독자님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때 찾아올게요. 그건 뉴스레터일수도, 혹은 어떤 다른 형태일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을 포함하여 12월에는 두 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마무리하고 싶은데요, 평소에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사진을 중심으로 글을 쓰다보니 사진으로 기록할 수는 없었던, 들려드리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있어, 오늘은 글로 풀어봅니다. 우선, 첫째 고양이 안나의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요.

#고양이사진 #안나수이 @annasui.cats

사진으로 기록할 수 없는 이야기, 안나

아침마다 갑상선 약을 먹어야 한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싱크대로 향한다. 알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시며 고개를 젖힌다. 꿀꺽. 다시 앞을 보면 거기 안나가 있다. 눈을 마주치고 길게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면서 느릿느릿 걸어온다. 소파로 온다. 약속한 듯 나도 소파에 앉는다. 꼬리를 세우고 나의 다리 사이를 서성이다가 앞발을 내 무릎에 한 번 올려보고 결심한 듯 올라온다. 그럼 나는 잠에 취한 몸으로 안나의 엉덩이를 토닥인다. 그러다 이것만으로는 성에 안차 영차하고 들어 올려 품에 꼭 앉는다. 3초 뒤 안나는 이제 그만 놓아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찾아와 울고, 관심을 보이면 또 침대 밑으로 숨고, 품에 안기면 싫은 티를 내면서도 기분이 좋아져 작은 골골송을 내고, 같이 자고 싶어 침대 위에 올라오지만 발 밑에서만 서성이는 고양이. 나와 남편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안나는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고.

자주 울고 잘 운다. 배가 고픈가 싶어 찾아보면 사료는 여전히 잘 채워져 있고, 화장실을 치워야 하나 싶어 보면 깨끗하다. 놀아줄까 장난감을 흔들면 휙하니 도망가고, 만져줄까 다가가면 침대 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다시 시간이 조금 지나면 밖으로 나와 우리 주변을 서성거린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스크래처 위에 자리 잡고 잔다.

사랑을 많이 바라는 고양이. 하지만 자기가 바라는 사랑이 어떤 형태인지 모르는 건, 사람이든 고양이든 안쓰럽다. 그래도 안나가 내게 확실하게 알려준 건, 받고 싶은 사랑의 출처. 과연 내가 지금 전하는 사랑이, 원하는 형태의 사랑일까 고민하며 그저 오랫동안 안나를 쓰다듬을 뿐이다. 이번 생의 우리는 아마 계속 그런 관계일 것 같다.